[ 아시아경제 ] 제267대 교황으로 미국 출신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이 선출된 가운데 그가 선택한 교황명 '레오 14세'에 담긴 의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8일(현지시간) 133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은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 이틀만이자, 네 번째 투표에서 프레보스트 추기경을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했다. 새 교황이 탄생한 건 지난달 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17일 만으로, 즉위식은 수일 내 열릴 예정이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앞으로 사용할 교황명은 '레오 14세'다. 라틴어로 사자를 뜻하는 '레오'는 가톨릭에서 강인함과 용기, 리더십을 상징한다.
새 교황은 교황명을 직접 선택하는데, 통상 과거 교황이나 성인의 이름 중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름의 주인이 걸어온 길과 남긴 유산이 새 교황의 가치관과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교황이 누구를 염두에 두고 이름을 선택했는지를 보면, 그가 교황직을 통해 어떤 가치를 우선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레오 14세' 교황명에는 19세기 말 노동권과 사회 정의를 강조했던 레오 13세 교황(1878~1903년 재위)을 계승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레오 13세는 '가톨릭 사회교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1891년 발표한 교회의 첫 사회 회칙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새로운 사태)'을 통해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조명하고 빈곤과 사회갈등의 원인, 국가의 의무 등을 제시했다. 이 때문에 레오 13세는 가톨릭의 사회 참여와 현대화를 이끈 인물이란 평가를 받는다.
앞서 가톨릭계에서는 새 교황의 교황명 선택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새 교황이 개혁파일 경우 사회정의와 노동자 권리에 헌신한 레오 13세를 기려 레오를, 청렴을 강조한다면 부패와 족벌주의를 척결했던 인노첸시오 13세(재위 1721~1724)를 기려 인노첸시오를 택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새 교황이) '레오 14세'라는 교황명을 선택한 것은 레오 13세의 회칙 '레룸 노바룸'으로 시작된 현대 가톨릭 사회 교리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라며 "또한 이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살아가는지 교회가 고민하고 있다는 분명한 언급"이라고 밝혔다.
'레오 14세'라는 교황명에서 알 수 있듯 이미 13명의 교황이 '레오'를 사용했다. 지금까지 가장 인기 있는 교황 이름은 요한으로, 역사상 23명이 이 이름을 택했다. 이어 그레고리오와 베네딕토가 16명, 클레멘스가 14명이다. 다만 베드로는 교황명으로 금기시된다. 이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첫 번째 사도이자 초대 교황이었던 성 베드로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상징성에서 비롯된 것이 크지만, '베드로 2세가 마지막 교황이 될 것'이라는 말라키아 예언서도 이런 금기를 굳히는데 한몫했다.
한편 레오 14세는 미국 국적이지만 20년간 페루에서 선교사로 활동했으며, 2015년 페루 시민권도 취득하고 같은 해 페루 대주교로 임명됐다. 미국인이면서도 빈민가 등 변방에서 사목한 그의 발자취가 교황 선출 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첫 미국 출신 교황의 탄생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을 통해 "그가 첫 미국인 교황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정말로 영광이며 조국에 있어 대단한 영예"라며 "나는 교황 레오 14세를 만나길 고대한다. 그 순간은 매우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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